회원등록 비번분실
한방에 끝낼 생각이면 한방에 내려 놓아야 한다.
 Home  > 다시 쓰는 철학이야기  > 본문
4퍼센트의 세계 안에는 답이 없다
작성자 dasi
작성일 2014-11-18 (화) 15:37
   
4퍼센트의 세계 안에는 답이 없다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google+로 보내기

(1)

우주는 4퍼센트의 물질, 23퍼센트의 암흑물질, 73퍼센트의 암흑에너지로 구성된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알고 있는 현상계라는 것은 4프로의 세계다. 물질계도 다 해명을 못한다. 암훅물질도 모르는 세계에 속하니까,

근대문명의 막장, 구성의 오류에 빠진 근대문명, 4프로의 현상계 안에서는 더 이상 답이 없다, 자연과학도 사회과학도 법칙을 말하지만 4프로의 현상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일 뿐, 현상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법칙도 아닐뿐더러 본질계에 통하는 법칙이 아니다, 본질계와 끈이 떨어진 4프로의 현상계의 법칙이다, 여기서 해법이니 대안이니 하는 것이 나올 수 없다.

4프로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운들 해결책이 나올 수 없고 진보니 발전이니 하지만 가당찮은 이야기이다, 4프로의 세계, 그 안에서 이리틀고 저리틀고 바꾸고 부수고 한다고 해도 진보는 없다, 무한반복의 시행착오만 있고 공멸만 있다, 윤회의 역사, 역사 아닌 역사만 있다,

본질계와 따로 노는 4퍼샌트의 세계, 끈 떨어진 연과 같은 현상계에서는 미래를 조망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역사적 발전과 진보를 이야기하고 인간발달을 이야기하려면, 문명사적 전환의 단서를 찾자면 본질계(진여계)와 현상계(생멸계)를 잇는 끈을 찾아야 한다, 양자를 연결하는 통로, 양자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게 인문학의 과제다,

4프로의 세계에서는 진보는 없다, 본질계에 끈이 닿는 인간과 인간사회, 거기에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본질계로 통하는 통로, 경로를 찾아야 한다,

(2)

대승기신(大乘起信), 대승에 대한 믿음이란 것은, 본질계(= 진여, 평등법계)에 대한 믿음이다, 본질계에 뿌리를 두는 인간발달, 사회적 진화에 대한 실천적 믿음이다,

* 현상계 안에서 윤회하는 자를 중생이라 하고 현상계를 넘어서 본질계와의 끈을 회복하는 자, 본질계에 뿌리를 두는 삶이 성립하는 자를 보살이라 한다. 유가에서도 본질계(=)에 뿌리는 두는 인생, 근본이 있는 자를 군자(君子)라 하고 뿌리 없는 인생을 중인(衆人), 범인(凡人)이라 한다,

기신론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해석분>에서 진여, 생멸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기신론에서 가장 예리한 문제가 무명의 문제다.

본질계(진여)는 평등 법계인데, 보편적 상호연관의 일세계, 조화의 일세계인데 그런데 현상계는 평등과 조화의 세계가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분열과 대립 쟁투의 세계인가? 현상계는 본질계와 전혀 다른 모습인가? 여기에 본질계와 현상계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무명(어리석음)이란 간섭요인이 있다, 여기서 일탈은 시작된다, 무명의 간섭요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본질계로 진입할 수 없다,

(3)

근대인문은 자아의 발견에서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고 고로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다. ‘가 뭔지를 묻지 않았다, 데카르트 자신도 내가 뭔지를 더 생각해보아야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더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그 라는게 불가적 개념으로 무명의 산물이라는 건데 근대철학에서는 무명의 간섭요인에 대한 통찰이 없다, 무명의 산물인 에서 시작한다, ‘라는 말뚝을 박고 시작한다, 여기서 주관의 장벽을 넘을 수 없다, 자기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날 수 없다, 천문학에서는 갈릴레이 이후 천동설이 무너졌지만 인문학에서는 천동설(자기 중심적 세계관)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 뒤 주관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 상호주관을 이야기하지만 주관을 많이 끌어모으고 조합한다고 해도 무명의 주관을, 이기적 자아를 아무리 모아놓아도 주관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객관은 도출되지 않는다,

그 뒤 근대이성, 그러나 그 이성도 무명의 장벽을 통과한 개념이 아니다, 현실의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사회역사도 이성적이지 않고 그러면 이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성의 작동기제는 무언가? 설명하지 못한다,

근대인문은 자아에서 시작해서 자아로 끝난다, <대승기신론 강좌>는 그것을 넘어서 본질계(대승의평등 법계)에 뿌리를 두는 사회적 자아를 이야기한다. 사회적 자아의 형성을 2차 인문혁명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강좌는 <기신론>이 혁명의 교재, 자아혁명, 사회혁명의 교재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승기신론>에 대한 공부에서 불교적 해석에 눈치보고 끌려갈 필요가 없다. 차라리 인문학적 마인드로 독해하고 당당하게 헤쳐 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불교라는 종교적 틀에 갇히면 기신론의 본래적 메시지를 살려낼 수가 없다, 종교적 신비주의나 권위주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Copyrightⓒ(주)방하 All right reserved.

주소 : 서울 양천구 오목로 182 미덕빌딩 201호  1566-4995 / 대구 수성구 범어동 250-4번지 053-741-0576

W3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