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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 -: 무지(無知)와 부지(不知)
작성자 dasi
작성일 2015-12-11 (금) 20:31
   
무명(無明) -: 무지(無知)와 부지(不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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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문헌사적 근거는
<잡아함경 12권>과 <연기경 1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잡아함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彼云何無明

若不知前際不知後際不知前後際
不知於內不知於外不知內外

不知業 不知報不知業報

不知佛不知法不知僧

不知苦不知集不知滅不知道
不知因不知因所起法

不知善不善有罪無罪習不習若劣若勝染污清淨
分別緣起皆悉不知

於六觸入處不如實覺知於彼彼不知不見

無無間等癡闇無明大冥是名無明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

()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

불법승을 알지 못하고 고집멸도를 알지 못하며,

()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음과 죄가 없음,

()과 불습(不習), 열등한 것과 뛰어남, 더러운 것과 깨끗함,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깜깜하여,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연기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云何無明

謂於前際無知於後際無知於前後際無知

於內無知於外無知於內外無知

於業無知於異熟無知於業異熟無知

於佛無知於法無知於僧無知於苦無知於集無知於滅無知於道無知

於因無知於果無知於因已生諸法無知

於善無知於不善無知於有罪無知於無罪無知

於應修習無知於不應修習無知於下劣無知於上妙無知

於黑無知於白無知於有異分無知

於緣已生或六觸處如實通達無知

如是於彼彼處如實無知
無見無現觀愚癡無明黑闇是謂無明

 

무엇이 무명(無明)인가?

과거에도 앎이 없고 미래에도 앎이 없고 과거에도 앎이 없으며

안에도 앎이 없고 밖에도 앎이 없고 안밖에도 앎이 없으며,

업에도 앎이 없고 이숙(異熟)에도 앎이 없고 업과 이숙에도 앎이 없으며

불 법 승에도 앎이 없고 고집멸도에도 앎이 없고

원인에도 앎이 없고 결과에도 앎이 없으며,

원인이 이미 생긴 모든 법에도 앎이 없고

착한 일에도 앎이 없고 착하지 못한 일에도 앎이 없으며

죄가 있음에도 앎이 없고 죄가 없음에도 앎이 없다.

그리고 응당 닦아 익혀야 할 것에도 앎이 없고

응당 닦아 익히지 말아야 할 것에도 앎이 없으며,

열등한 것에도 앎이 없고 최상 미묘한 것에도 앎이 없으며,

검은 것에도 앎이 없고 흰 것에도 앎이 없고

다름이 있는 것에도 앎이 없으며,

인연이 이미 일어나 육촉의 닿임에도 온통 앎이 없다

앎이 없음이 이와 같아 어느 한 구석도 앎이 없다, 철저히 앎이 없다.

보지도 못하고 관하지도 못하고,

어리석고 어두어 밝음이 없이 깜깜하니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잡아함경은 무명을 부지(不知)로 이야기하고
   연기경은 무지(無知)로 이야기한다,

   부지와 무지는 이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면 알 수 있는데도 부주의한 것,
무관심해서 모르는 것, 알아야 함에도 노력하지 않는 것, 이런 의미다,

잡아함경에서는 시공간상으로 현재적이다,

그러나 연기경에서는 과거, 미래, 현재 통털어 통시적으로 
촉이 미치지 못하는 것
, 싹수가 없는 것몽매한 것, 깨어나지 못하는 것,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생각도 안 하는 것,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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