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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잉여(剩餘)이다(2)
작성자 link-up
작성일 2009-01-05 (월) 09:13
   
‘문제는 잉여(剩餘)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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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剩餘)’가 문제다(2)



인체의 병리도, 사회적 병리도 그 근원은 잉여이다, 그러니까 있어야 필요 이상의 것이 잉여다. 물론 있어야할 것이 없는 것도 잉여다. 그것은 마이너스 잉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과한 것도 잉여고 모자란 것도 잉여인 셈이다, 건강의 정의가 무엇인가? 잉여가 없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잉여가 만병의 근원이다.

(1) 음식을 먹어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이상으로 먹으면 음식은 독이 되고 인체를 병들게 만든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그렇다, 먹기는 잔뜩 먹고 먹은 값을 못하면 죄업이 된다.
 

(2) 지행합일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지행합일이 되지 않는다면 안다는 것, 지적 잉여는 정신적으로 분열증을 초래한다, 또 아는 이상으로 행동하는 행동과잉도 품격을 파괴한다,


(3)
재물도 재산도 그렇다, 많이 가지는 만큼, 그 사람의 덕성이 비례적으로 크다면 잉여는 없다. 그러나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덕성이 그에 비해 작다면 그 차이가 잉여가 된다. 그래서 도덕성이 감당할 수 없는 재물은 타락의 근원이 되고 그 사람을 파괴시킨다,


(4) 권력도 그렇다. 권력의 크기에 비해서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그만큼 커다면 권력은 타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에 비해 자질과 능력이 권력을 감당할 수 없다면, 감당할 수 없는 그만큼이 권력의 잉여가 된다, 그 잉여에서 권력은 타락하고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5) 과학기술력도 그렇다. 기술의 발전할 수록 소통적 합리성과 도덕성이 같이 발전한다면 잉여는 없다. 그렇다면 문명은 병들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적 수준은 높고 소통적 합리성과 도덕적 수준은 그에 비해 낮다면 그 차이가 기술적 잉여가 된다, 기술적 잉여, 그것이 문명의 질병이다.

(6) 생산력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것이 곧 사회역사적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기술이 부족해서 생산력이 발달하지 못해서 자본주의가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순환체계가 감당할 수 없는 생산과잉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자초한다.

* 환경공해도 그렇다. 자연생태의 순환체계 속에서 연소될 수 없는 공해물질 그것이 잉여다, 그러니까 잉여론적 관점에서 자연, 인간, 사회적 병리를 총체적으로 해명이 가능하다,


 

(7) 근대성의 평가에 대해서는 오랜 논란이 있었지만, 간명하게 말하면 도구적 이성과 소통적 합리성(= 도구적 이성을 제어할 수 있는 비판적 이성)의 괴리가 근본적인 문제고 근대문명의 해체를 초래한다, 

(8) 2008년의 금융공황, 월가의 붕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장가치의 버블붕괴, 그것에 의한 시장의 자기파괴과정도 결국 잉여가 문제다, 버블이란 것 자체가 잉여다, 

인간은 더 많은 잉여를 남기려 하고 그래서 잉여는 갈수록 커져간다. 인간에 의해서 조장된 잉여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잉여가 되고 그 잉여는 인간적 질서를 파괴하는 거대한 공룡으로 커져왔다. 잉여의 사냥꾼이 된 인간, 그러나 잉여의 붕괴과정에서 인간은 신음한다, 잉여가 고통의 원인이 된다, 


역사의 계절은 바뀌어 잉여는 붕괴하고 있다, 역사는 잉여의 기제, 야만의 기제가 붕괴되는 그 지점을 향한다, 역사의 자기 조정과정, 자정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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